행정 투명성 · 시민의 알 권리

공무원의 직무유기가 의심될 때,
정보공개청구를 반복해서 낼 수 있을까

담당 공무원의 미온적 대응에 답답함을 느낀 시민이 같은 사안을 두고 여러 차례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것은 정당한 감시 수단인가, 아니면 권리남용인가. 법 조문과 판례를 통해 실무적으로 정리한다.

최근 한 유튜브 영상을 계기로 "담당 공무원이 직무를 소홀히 하는 것 같은데, 같은 맥락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여러 번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눈에 띈다. 식약처를 비롯한 여러 행정기관에 민원을 넣었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받지 못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다음 단계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다만 아무렇게나 반복하면 오히려 '종결 처리'라는 벽에 부딪힐 수 있으므로, 제도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청구 문서를 검토하는 모습
정보공개청구는 민원과 달리 법률상 청구권으로 보장되어 있어, 공공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처리를 거부할 수 없다.
01 · 제도의 근거

A.정보공개청구권, 민원과는 다르다

정보공개청구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근거한 법률상 권리다. 민원처럼 담당자의 재량이나 친절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고 기관은 원칙적으로 1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 통지해야 한다. 이 점이 핵심이다. 담당 공무원이 특정 민원에 대해 성의 없이 답하거나 처리를 미루더라도, 그 민원과 관련된 문서, 처리 경과, 검토 보고서, 통화·면담 기록, 결재 라인 등은 별도의 정보공개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왜 답을 안 해주냐"고 다시 묻는 대신, "그 사안을 처리한 문서와 기록을 내놓으라"고 청구하는 것이 훨씬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된다.

청구 방법

  • 정보공개포털(open.go.kr)에서 온라인으로 청구서를 제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 해당 기관 방문, 우편, 팩스로도 청구할 수 있으며 구술 청구도 법상 인정된다.
  • 청구서에는 청구 정보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식약처의 모든 자료"처럼 막연하게 쓰면 특정성 부족으로 반려될 수 있으니, 기간·부서·사안명을 명확히 좁히는 것이 좋다.
02 · 반복 청구의 한계

B.몇 번까지 반복할 수 있는가

정보공개법 제11조의2는 '반복 청구 등의 처리'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동일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동일한 내용의 정보공개청구를 반복하거나, 이미 안내한 사항을 되풀이해 청구하는 경우, 공공기관은 두 차례 이상 그 처리 결과를 통지한 뒤에는 안내로써 갈음하고 종결 처리할 수 있다. 실무에서는 통상 3회 이상 동일 청구가 반복되면 그 이후 접수분은 기관장 결재를 거쳐 종결 처리하는 방식이 많이 쓰인다.

핵심 포인트. 종결 처리는 "이미 답한 내용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또 물을 때"를 겨냥한 제도이지, "다른 각도에서, 다른 대상 문서를 새로 청구하는 것"까지 막는 것은 아니다. 청구 대상을 매번 구체적으로 달리하면 반복청구 종결 처리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대법원의 시각 — 남용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

대법원(2004두2783 등)은 정보공개청구의 목적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으며, 오로지 상대 기관이나 담당자를 괴롭힐 목적임이 명백한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복적인 청구라 해서 신의성실 원칙 위반이나 권리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다시 말해 시민이 공무원의 직무 태만을 의심하고 이를 규명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순차적으로, 사안을 좁혀가며 청구하는 것은 판례상 정당한 권리 행사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03 · 실전 전략

C.효과적으로 청구를 설계하는 법

단계청구 내용 예시
1차본인 민원 접수일부터 현재까지의 처리 경과 및 담당 부서 배정 내역
2차해당 민원에 대한 내부 검토 보고서·회신 초안·결재 문서
3차담당자 간 업무 협의·통화 기록, 처리 지연 사유에 대한 소명 자료
4차유사 민원의 평균 처리 기간 통계 및 기관 내부 처리 지침

이렇게 매 청구마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달리하면 '동일 청구 반복'에 해당하지 않아 종결 처리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담당 공무원의 업무 처리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만약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단서가 된다.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는 개인정보, 수사·재판 관련 정보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통상적인 민원 처리 문서까지 비공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공개 관련 자료와 서류
비공개 또는 부존재 통지를 받더라도 이의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비공개·부존재 통지를 받았다면

  1. 이의신청 — 통지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 처분청에 직접 신청.
  2. 행정심판 —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등에 90일 이내 청구 가능.
  3. 행정소송(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 — 이의신청·행정심판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제기할 수 있다.
04 · 정리

D.결론 — 무기가 아니라 절차로 접근하라

정보공개청구는 감정적으로 항의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고 근거로 다투는 절차다. 같은 문장을 복사해 반복 제출하면 종결 처리될 뿐이지만, 사안을 단계적으로 좁혀가며 다른 문서를 청구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감사(監査) 과정이 된다. 식약처를 포함한 어떤 행정기관이든, 시민이 이렇게 절차를 밟아가는 것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다만 청구 하나하나가 기관의 행정력을 소모시킨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 목적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범위로 설계하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르게 원하는 답을 얻는 길이다.

본 글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및 관련 판례·정부 정보공개 실무 안내서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적 판단은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분쟁이 예상되는 경우 변호사 등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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