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어 아들, 피터팬 아빠 전경철

2026년 9월 5일 오후 7시 56분, 진짜 아빠 한 분이 떠났습니다

이시대에 진정한 아빠 전경철씨가 지난 9월 5일 별세했습니다.

마지막 사진이 창문 너머였대요. 시설에 맡겨진 아들 제원이를 창문 밖에서 몰래 찍는 사진. 들어가서 안아주고 싶은데, 들어갈 수 없으니까 밖에서 셔터를 누르는 아빠.

그 사진을 보고 하루 종일 가슴이 안 내려앉더라고요. 27년을 같은 자리 지킨 아빠가, 마지막엔 창문 밖에서만 아들을 봐야 했다는 게. 그래서 이 글을 써요. 많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그분을,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려고.

책상 위 책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 27년의 시간이 한 권에 들어있더라고요

1. 27년은 숫자가 아니라 9855번의 아침이었어요

아들 제원이, 올해 스물일곱. 정신연령은 두 살 정도래요. 2007년에 중증 자폐 진단받았다고 해요. 그때부터예요.

27년이면 9855일이에요. 그 9855일 동안 이 아빠는 단 하루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대요. 밥 먹이는 거, 씻기는 거, 밤에 잠 못 자고 보채는 거. 혼자 다 했대요. 치매 걸린 어머니까지 모시면서.

우리가 감동한 게 불쌍해서가 아니에요. 솔직히 "나는 못 한다"는 걸 아니까 그래요. 하루도 아니고 27년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냥 아빠라서 한 거. 그게 제일 어렵거든요.

온라인에서 터진 글들 보면 다 이 얘기더라고요.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매일 같은 자리 지킨 거. 그게 위대한 거였다고. 유퀴즈 댓글에도 "아빠가 준 마지막 OO" 같은 글이 수천 개 달렸대요. 다들 자기 아빠 생각하면서 운 거예요. 네이버에서 조회수 높은 가족 글들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가장 튼튼한 울타리" 같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밥 먹이고 씻기는" 같은 구체적인 아침이 있어야 오래 읽힌대요. 그래서 이 글도 그렇게 썼어요. 9855번의 아침이라고.

2. 간암 말기래요. 근데 치료 안 받고 천 곳을 돌았대요

작년 4월에 간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받았대요. 살고 싶으면 항암치료 받아야 하는데, 이 분은 치료를 거부했어요.

대신 전국을 돌았대요. 아들이 살 곳 찾으러. 1000곳을 돌았대요. 근데 한 곳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대요. 천 곳이나 돌았는데 단 한 곳도요. 입소했다가 퇴소당하기도 했다고 해요.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최중증 성인 남성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대요.

이 대목에서 좀 화가 나더라고요. 한 아빠의 사랑은 27년을 버텼는데, 우리 사회는 천 개 시설이 있어도 한 명을 못 받는구나. 그게 지금 우리 모습이더라고요. 부모 사랑은 언젠가 끝나는데, 제도는 끝나면 안 되는 건데 말이에요.

JTBC, YTN 보도에 따르면 의사가 삶을 연장해달라고 호소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자기 목숨보다 아들 거처가 먼저였던 거죠. 그래서 6개월 살 거라던 분이 1년 넘게 더 사신 거예요. 아들 집 찾을 때까지 버틴 거예요. 온라인에서 장례식에 사람 많은 사람들 특징 1위가 "무해한 다정함"이래요. 빚을 남기지 않고 그리움만 남기는 사람. 전경철씨가 딱 그랬어요. 빚 대신 4억4760만원과 네버랜드라는 이름만 남기고 간 거예요.

전국을 돌며
1000곳을 돌았대요. 받아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대요. 그게 우리 사회였어요

3. 왜 하필 피터팬이었을까, 그리고 왜 "고마웠어 아들"이었을까

아들을 왜 피터팬이라고 불렀냐면,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라서래요. 동화 속 피터팬처럼. 처음엔 그 이름이 너무 슬프게 들렸어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 이름에 사랑이 다 들어있더라고요. 자라지 않으니까 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마지막 말. "고마웠어 아들." "아빠는 잊고 행복하게 살아" "떠올리면 문득 그립기는 하다 정도로 기억하면 좋겠다" "목숨줄을 붙잡는 존재" "많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말들이 왜 터졌을까요? 제가 인스타그램 추모글 20개 넘게 분석해봤어요. 터지는 글들 공통점이 명대사 한 줄이 있다는 거예요. 딸 생일마다 꽃 배달 예약해놓고 떠난 아빠, 아이패드에 마지막 노래 남기고 떠난 할머니. 다 마지막 선물 한 개가 있어요. 전경철씨도 그랬어요. 마지막 선물이 "고마웠어 아들"이었어요. 원망이 아니라 감사로 끝난 거예요.

그래서 위대한 거예요. 자기 인생 망쳤다고 말하지 않고, 아들 덕분에 행복했다고 말한 사람. 그 한마디가 우리 안에 있는 편견을 깨부쉈어요. 장애를 짐으로 보는 시선을, 사랑으로 보는 시선으로 바꿔버렸어요. 유퀴즈 제작진이 남긴 "남겨주신 마음 오래 기억할게요"라는 말이 그래서 더 울림이 컸어요. 보건복지부 장관도 "우리 사회에 준 깊은 울림, 정책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대요.

아빠라는 존재는 깨끗하게 잊고 네 행복만을 위해 살라고 하고 싶은데 솔직하지 않은 심정이에요.
"떠올리면 문득 그립기는 하다" 정도로 기억하면 좋겠어요.
- 유퀴즈 온 더 블록 마지막 인터뷰 중
네버랜드 마을
그가 꿈꾼 네버랜드. 어른이 되어도 쫓겨나지 않는 집. 이제는 우리가 지어야 해요

4. 4억4760만원, 그건 기부가 아니라 유언이었어요

책 인세랑 후원금 다 합쳐서 4억4760만원을 모아 재단을 만들었대요. 처음엔 와, 많이 모았네 했어요. 근데 다시 보니까 기부가 아니더라고요. 유언이었어요.

자기가 떠나면 끝날 사랑을 돈으로 바꿔서 남겨둔 거예요. "내가 없어도 이 돈으로 제원이 같은 애들 살 집 지어줘"라는 유언. 자기 아들 하나 살리려고 만든 게 아니라, 앞으로 자신 같은 부모들이 길에서 울지 않게 해달라고 남긴 돈이에요.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위대한 거예요.

온라인에서 감동 주는 글들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마지막 선물이 구체적이라는 거예요. 꽃 배달 5년치 예약, 마지막 생일 케이크, 아이패드 속 노래. 전경철씨는 4억4760만원과 "피터팬의 네버랜드"라는 마을 이름이었어요.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는 거예요. 돈이 아니라 이름으로 남았으니까요.

시민들 도움으로 제원씨는 이제 공동체 마을에서 생활하게 됐다고 해요. 그걸로 끝이 아니에요. 그 마을이 모델이 되어 전국에 생겨야 해요. 그게 그가 우리에게 부탁한 마지막 일이에요.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도 "돌봄의 무게 가족만 짊어져선 안 된다"며 이번 주 대책 내놓는다고 했대요. 그게 바로 전경철씨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예요.

기부금 통장
인세와 후원금 전부를 내놓았다고 해요. 유언처럼, 다음 부모들을 위해

5. 그래서 우리는 왜 이렇게 울었을까 - 미안함과 고마움

저는 두 가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미안함. 1000곳이 거절했다는 뉴스 보면서, 혹시 나도 모르게 제원이 같은 아이를 외면한 적 있지 않나 하는 마음. 내 주변에 피터팬은 없었나, 있었는데 못 본 척한 건 아닌가. 인스타 댓글에도 "성인발달장애인 가족입니다. 제원씨 보니 제 남동생이랑 똑같아서"라는 글이 수백 개 달렸대요. 다들 자기 이야기처럼 운 거예요.

다른 하나는 고마움. 그래도 이런 아빠가 있었다는 게. 27년을 버틴 사랑이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게.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는 걸 보여줘서 고마운 마음. 온라인에서 장례식에 친구 많은 사람 특징 1위가 "무해한 다정함"이래요. 빚을 남기지 않고 그리움만 남기는 사람. 전경철씨가 딱 그랬어요. 빚 대신 4억4760만원과 네버랜드라는 이름만 남기고 간 거예요.

그분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있어요. "많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요. 무슨 큰 업적 남긴 사람으로가 아니라,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그 말.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거예요.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위한 집을 짓고 떠났으니까요.

이시대에 진정한 아빠 전경철씨가 지난 9월 5일 별세했습니다. 창문 밖에서 아들을 찍던 그 아빠가 만든 네버랜드에서, 제원이가 이제는 창문 안쪽에서 편히 잘 수 있게, 우리가 기억하면 돼요. 안녕, 피터팬이라는 책 제목 한 번 검색해보는 거. 그게 시작이더라고요. 유퀴즈 제작진이 남긴 말처럼 "남겨주신 마음 오래 기억할게요."

촛불 추모
9월 5일 오후 7시 56분. 따뜻했던 사람으로 오래 기억할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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